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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되게 하신 주님을 따라(고린도전서 1:10-17)
2020-06-02 11:28:29
김민
조회수   270

하나되게 하신 주님을 따라(고린도전서 1:10-17)

 

1. 분열된 고린도 교회의 모습(10-12)

여러분은 성도입니다.”라고 고린도교회를 추켜세우던 바울은 본격적으로 고린도교회에 대한 권면을 시작합니다. ‘같은 말, 마음, 생각으로 뭉치라구요. 바울이 떠난 이후 고린도 교회 안에서 분쟁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이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설명한 다음 구체적 교회의 문제르 재확인합니다.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여러 설교자와 지도자의 이름을 중심으로 분파를 만들어 모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서 유력한 그룹의 대표들의 이름을 두고 그룹 구성원끼리 싸워 이기는 것으로 세력을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의 모습이 교회에도 똑같이 적용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 신앙적 모범을 보인 사람들을 대표로 두다 못해 그리스도라는 분파까지 내세웠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보여집니다.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구별되지 못한 교회공동체의 모습을 들은 바울이 이제 그들에게 이야기를 건냅니다.

 

2. 그리스도만이!(13)

13절에서 바울은 반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느냐”? 앞서 바울이 인사하며 전한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은 자격 없는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전한 하나의 통로가 되신분입니다. 핏줄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공동체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갈라질 수 있냐는 질타입니다. 거기에 더해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어느 한 편만을 드는 분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은 잘못임을 말합니다. 그 다음으로 바울은 자신이 어느 세력의 대표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견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십자가도 세례도 바울 자신이 주인공일 수 없다는 것이지요. 바울은 신앙 공동체의 삶이 전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인사부터 전했었습니다.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 초대받는 의례였던 세례 역시 오직그리스도 예수만이 주인공일 수 있습니다. 바울을 비롯한 아볼로나 베드로 등 사람이 그 자리를 감히 대신할 수 없고, 도리어 사람을 중심으로 한 경쟁적인 분열은 구원받은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와는 거리가 먼 모습임을 말합니다.

 

3. 복음을 위하여(4-17)

특별히 바울은 자신이 전한 세례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바울이 세례를 준 사람은 그리스보, 가이오 뿐. 조금 더 생각하면 스데바나 가족뿐이라구요. 그 외에는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례를 준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마도 이것은 자신이 세를 불리기 위해 세례를 주었다는 오해로부터 자유할 수 있기 때문이고, 분열의 상황에서 권면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사람에게 위임되어 전해지는 것일뿐, 세례를 받는 사람과 세례를 준 사람과의 사리에는 어떤 의무의 관계가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덧붙여 바울은 자신의 사명이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전파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물론 마태복음 28장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이 있지만 세례 자체가 구원은 아닙니다. 구원은 세례라는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고, 그 뜻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십자가까지 매달리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나의 행위가 아닌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 사람이 드러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 공동체의 존재 근간임을 바울은 전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다름없이 말의 시비로 복음을 희석하거나. 주님의 구원을 가리우는 모습이 아니어야 함을 바울은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바울의 권면은 우리가 상상할 필요 없이 이미 똑같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중심을 두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교회 공동체에 주신 기준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구별된 삶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이게 옳을 수도 있고, 저게 옳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를 깨뜨릴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혹여 우리 안에 나뉨의 모습이 있다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랑으로 걸으신 길을 생각하기 원합니다. 비교하여 좋은 말, 더 좋은 마음, 더 좋은 생각이 아니라 그래도 같은 말, 그래도 같은 마음, 그래도 같은 생각을 품고 우리를 묶어주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된 모습으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그렇게 모인 곳이 바로 주님이 계시겠다고 말씀하신 교회입니다. 구원의 기쁨만이 가득한 교회.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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