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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총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삶(사도행전 12:1-17)
2018-01-30 09:51:08
김민
조회수   437

주님의 은총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삶(사도행전 12:1-17)

 

1. 헤롯 아그립바의 박해(1-5)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이방 여러나라에 다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며 제자들이 늘어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좋은 일만 계속되는 법은 없나 봅니다. 이런 좋은 날들 가운데 헤롯이 등장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님께서 태어났을 때 두 살이하의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던 그 헤롯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입니다. 이 헤롯 또한 할아버지처럼 하나님의 역사에 반하는 대적자의 위치에 서 있어요. 무슨 일을 합니까?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핍박과 박해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과 그 추종자들에 의한 것이었다면 오늘 본문의 탄압은 정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헤롯이 왜 이런 일을 행했을까요? 로마에 있던 헤롯 아그립바는 로마의 황제 길리우스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를 지배하는 분봉왕으로 임명받고 새로 부임받은 상황이었습니다. 새로 부임하면 인기를 끌어야겠지요? 그런데 이 헤롯은 유대핏줄과 에돔핏줄이 섞인 사람이었어요.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는 혈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때문에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거에요. 그래서 더욱 헤롯 아그립바는 그러한 분란이 없게 하기 위해 환심을 사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는거죠   

그래서 타겟으로 삼은 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미움을 사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이었어요. 그들을 죽이는 것을 서슴지 않았지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핍박에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단단해지는 그리스도인 들을 보면서 얼마나 화가 나며 불안했겠어요? 그런데 군대를 가진 헤롯이 그들을 댓신 죽여주는거에요.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처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적고 별 영향이 없어서 손을 대지 않다가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고 유대인들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니까 그것을 기회로 삼고 죽음으로 자기의 편을 만드는거지요. 그 본보기로 초대교회의 영향력이 있던 야고보가 헤롯의 손에 죽게 되는 거에요.  

3절을 보면 헤롯의 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까 유대인들이 기뻐했다는거죠. 그것을 보고 헤롯이 더욱 이 일에 박차를 가합니다. 이번에는 베드로까지도 잡으려 하지요. 왜요? 무교절이라고 성경에 나오지요? 유대의 절기가 되면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요! 많이 모이면 자연스레 홍보가 되는거에요.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까지 죽이게 되면 유대인들을 완전히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겠지요.  

정보와 치안, 군대를 지닌 헤롯이었기에 베드로를 쉬이 잡아들입니다. 감옥에 가두고 가장 죽이기 좋은 때를 골라 내놓을 준비를 하는거죠.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되는 사도들이 죽고 옥에 갇히게 됩니다. 교회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요. 종교 문화적으로는 유대인들이! 정치 사회적으로는 헤롯이 전방위적으로 교회를 압박하며 씨를 말리려 하는 상황이었어요.  

교회과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5절 하반절입니다. 기도하는거에요.

교회가 기도하는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은 이러한 상황이 대단한 위기였다는 의미구요. 다음으로는 교회가 위기 가운데 흩어져 도망한 것이 아니라 기도로 뭉쳤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레지스탕스처럼 물리적인 폭력이나 로비를 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했다는 것이지요.

   

2. 베드로를 구원하는 천사(6-11)

한편에서는 기도를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그 기도의 응답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6절부터는 잡혀간 베드로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다음 날이면 끌려나와 죽게된 날이라고 설명하지요. 죽기 전 날 밤. 베드로는 간수들에 둘러쌓여 사슬에 묶여 잠들어 있었고 이제 일어나면 죽는거죠. 탈출은 힘들다는 그 모습을 그리고 있는거죠. 그러한 상황 가운데 천사가 나타나요. 그리고 베드로를 감방에서 끌어내어 거리까지 나가게 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 홀연히 나타난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등장하는거에요. 치밀하게 죽음을 꾸민 헤롯에 대해! 이제는 끝나는 그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생명살림으로 그 죽음의 궤계를 물리치시는거에요.

 

3. 베드로의 생환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12-17)

그 생명의 길 가운데 베드로가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어디입니까? 12절에 나오지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입니다. 여기서 요한은 사도 요한이 아닌 마가 요한 그러니까 마가복음의 저자를 말하는데요. 제자들이 수시로 모여서 기도하던 기도처였었지요. 마가의 다락방이요. 그리고 베드로가 찾아간 그 순간에도 이곳에서의 기도는 끊이지 않았던 거에요. 앞서 5절에 등장했던 기도하던 그 모습 그대로 베드로의 잡힘부터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12절 후반부에 많은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다라는 구절은 원어로 보면 미완료시제로 이것은 지속에 대한 강조를 말합니다.

중보기도(도고기도)를 아시지요? 무언가 기도가 필요한 이들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계속해서 기도를 함께 하며 그 기도가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를 놓지 않는 것 말이에요. 이러한 기도가 힘이 있음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우리는 믿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기도하면서도 기도의 힘을 너무 쉬이 간과해버린다는 것이지요.

어느 동네에 하도 비가 오지 않아 비가 오게 해달라는 특별 기도회를 했다는거에요. 사람들이 모여서 열성으로 기도합니다. 기도하던 중에 비가 내려요. 이제 집에 가야합니다. 그런데 우산을 챙겨온 사람은 조그만 아이 하나 뿐이었어요.

무슨 말이에요?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우산을 챙겨 가는 순수함이 믿음이라는거에요. 기도는 하러 가지만 '비가 과연 오겠어?' 그런 마음이 오늘 본문에는 나와요. 어디죠? 베드로가 문을 두드리는데 로데라는 여종이 그 소리를 듣고 베드로가 왔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자 사람들이 뭐라고 해요? “니가 미쳤구나”   

주님, 우리의 형제! 베드로 사도를 구원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베드로가 왔어요.”라는 소식이 들리니까 뭐라고요? “미친 소리 하지 말라는거에요.

그리곤 보고서야 믿죠.

이 일련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잡혀가신던 때부터 부활 후 다시 등장하실 때와 유사한 구조를 보입니다.

죽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기가 옵니다. 정치가에 의해 잡혀갑니다. 그 뒤에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배경이 깔려있지요. 아무런 대항 없이 잡혀가요. 그리고 무교절’, ‘잡다’, ‘맡기다’. 과거 예수님이 잡혀갔을 때와 같은 단어들이 똑같이 쓰입니다. 돌아올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죽음 가운데 다시금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요. 그러나 처음에는 믿지 않는 모습도 이전과 똑같아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일부가 경험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믿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특별히 부활한 예수님과 대화하며 오랜 시간 동행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한 엠마오 가는 길의 두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넣었던 도마처럼 말이에요.

마음이 없으면! 믿음도 없는거에요.

오늘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교회의 핍박을 그리면서 과거 예수님의 잡히심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을 대입하는거에요. 그러한 상황 가운데 부활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제자들에게! 죽음의 상황이 끝이 아니었고 부활이 있었음을 상기하게 하고, 또 다시 교회의 위기에서 천사의 도움으로 베드로는 완전히 구출되었음을 그려내는거에요.

한 번의 위기와 죽음 가운데 완전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고 회복을 보고 확인합니다.

두 번째의 위기와 죽음이 찾아오지만 또 다시 완전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고 그것을 확인하는거에요.

자 그러면 세 번, 네 번째의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그 어려움을 참고 인내할 수 있는 믿는 구석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누가는 우리에게도 기억하라고 일러주는 거에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지만! 어려움은 있을 수 있는거에요. 나를 넘어뜨려 기쁨을 얻으려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지 나타날 수 있는거죠! 그러나 주님의 백성인 우리를 주님은 그 어둠의 상황 가운데 그냥 놔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이야기하는거에요.

때문에 진심으로 믿고 기도하며!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면!

오늘의 낙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살 수 있다는겁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감에 늘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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